
주기도문의 다섯 가지 핵심 기도 주제 중 특히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부분을 중심으로, 성경 본문(마6장, 창3장, 마4장, 고전14장, 약1장 등)에 나타난 ‘시험(유혹, 시련, 고난, 테스트)’과 그 의미를 다룬 내용들을 3개의 소주제로만 분류한 글이다. 여기에는 장재형목사가 설교나 가르침에서 강조해온 주제들이 포괄적으로 녹아 있으며, 그가 언급한 고전14장의 다섯 마디 말, 야고보서의 시험(유혹) 교훈, 창세기3장의 아담과 마태복음4장의 예수님 간의 대조, 그리고 주기도문의 핵심 구조 등을 함께 통합적으로 서술한다.
Ⅰ. 하나님 이름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의 우선성
장재형목사는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두 가지 커다란 대전제가 기도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강조해왔다. 즉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임하고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신 말씀 또한 이 흐름에 연결된다. 그리고 예수님은 팔복선언(마5:3~12) 중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간절히 사모하는 영적 갈망을 가지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의’는 단순히 세상적 정의나 도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상태’, 곧 하나님의 나라와도 직접 연결되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향해 우리가 목말라해야 하며, 그 나라가 임하도록 진심으로 구해야 한다. 주기도문은 바로 그 기도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제시한다. 모든 기도 가운데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늘 설교에서 반복해서 강조한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을 채우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는 태도야말로 기도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성경 전체를 꿰뚫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란, 어떤 물리적 공간이나 정치적 왕국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는 곳, 즉 하나님의 뜻과 다스리심이 실제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이자 상태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라고 선포하셨을 때, 그 ‘천국’(하나님 나라)은 오직 죽은 뒤에만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 땅에도 임하기 시작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뜻했다. 따라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현장의 모든 상황과 마음의 모든 영역 속에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려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며, 교회 공동체에도 주님이 왕이 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교육·선교·구제·다양한 사회 활동 등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성도 개인만의 경건 생활을 넘어 교회 공동체와 세상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라는 초청이다.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자각할 때, 기도는 곧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는 우선적 행위가 된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이 우선순위가 확립되어 있을 때에야 다음 단계의 기도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주기도문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를 앞머리에 두고, 이어서 우리 인간이 구해야 할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연결한다. 즉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뒤따른다. 장재형목사는 주기도문을 크게 다섯 가지 기도(또는 기도 제목)로 구분하기도 하고, 더 세밀하게 여섯·일곱 가지로 나눠보기도 하지만, 핵심은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 그리고 그 뒤 ‘일용할 양식·용서·시험’이라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하나님, 아버지이신 당신의 이름이 높여지길 원합니다. 이 땅 가운데 당신의 나라가 임하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라는 고백이다. 교회를 포함한 온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길 간구하는 마음을 품을 때, 그다음에 우리의 일상적 필요나 관계의 회복,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를 구하는 기도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구하는 것 없이 곧바로 우리의 필요만을 아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주기도문의 본래 의도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의 통치를 구하는 기도의 태도야말로, 모든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대전제’이다. 이를 잊지 않고 붙들며, 교회와 가정, 그리고 개인의 일상에까지 항상 “주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이름이 온 세상에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 자체가 큰 능력이 된다. 장재형목사 역시 이를 힘주어 강조하며, 교회가‘죽은 교회,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가 되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교회가 되려면, 그 기도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설파해 왔다.
Ⅱ. 일용할 양식과 용서의 기도, 인간관계의 회복
주기도문에서 앞선 두 가지 큰 전제(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에 이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가 계속된다. 장재형목사는 설교나 강연에서 이 대목들을 연결하여, 이것이 인간 삶의 ‘현재와 과거’를 다루는 중요한 영역임을 설명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오늘 우리의 ‘현재’를 의미하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과거의 상처와 문제,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난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먼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살펴보자.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상적 필요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먹고 입고 마시는 물질적 요소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무시하지 않으시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심을 믿고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산상수훈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고 하신 말씀은, 결코 우리의 물질적 필요가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라는 뜻이다.
장재형목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이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물리적 양식이나 경제적 수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양식, 곧 말씀도 포함되며, 진정한 만족과 쉼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때(마4장)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는 구절이 바로 이와 연결된다.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건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적·영적 필요를 아시며 채우시도록 전적으로 의탁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눈을 들어, 매일의 필요를 구하고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는 훈련이기도 하다.
이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용서의 기도는 과거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보여준다. 과거의 잘못, 상처, 갈등이 현재의 관계와 미래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우리는 용서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상대방을 자유케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셨다(요1:29)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없이 크신 사랑으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서로에게 연약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풀어주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용서를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길”이라고 자주 말한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이라면, 이제 형제와 이웃의 관계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용서받았다’고 기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그 사랑을 흘려보내면서 다른 사람과도 화해하는 일에 주력해야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바이며, “네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라는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용서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며, 때로는 깊은 상처를 동반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길이고,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살 수 있는 핵심 동력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친 누군가를 위한 용서는 당연하다. 어렵지만 나아가야 할 길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고, 그다음에 우리의 기본적 필요와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릴 것’을 촉구한다. 이 순서를 분명히 하고, 또 끈질기게 기도하며 실천할 때, 교회와 사회 안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문화가 싹트게 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하는 대목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제대로 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라는 의미다. 하나님과 화해된 사람이 이웃과도 화해의 관계를 맺어야 신앙이 온전히 자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혹은 개인의 삶 속에서 누구를 미워하거나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를 통해 그 묶임을 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과제임을 주기도문은 분명히 보여준다.
이처럼 일용할 양식과 용서의 기도를 순서대로 붙잡고 나아갈 때, 우리는 일상에서 필요한 공급뿐 아니라 마음의 얽힘과 관계의 상처에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물질적 필요와 영적 필요, 그리고 인간관계의 깨어짐과 화해 등을 모두 하나님께 의탁하며 전진할 때, 우리의 지난날과 현재가 모두 주님 안에서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기도 훈련의 핵심이자 실천의 열쇠”라고 강조하며, 교회는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방언과 성령의 역사도 체험하되,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말씀을 깨닫고 서로를 용서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방언과 예언 등은 중요한 은사들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전13장)고 사도 바울이 말했듯, 참된 기독교 신앙은 사랑과 용서로 나타난다. 그래서 “다섯 마디 말로 깨달음 있게 가르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고전14:19)는 경고가 우리에게 필요하며, 그 다섯 마디가 곧 주기도문에 응축된 다섯 가지 기도의 골자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장재형목사는 거듭 강조해 왔다.
Ⅲ.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유혹과 시련을 이기는 기도
주기도문의 마지막 기도 주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미래와 관련된 문제로 해석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기도의 의미를 설명할 때, “시험”이 갖는 여러 차원의 뉘앙스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어에는 시험을 뜻하는 여러 단어가 있는데, trial(시련), test(테스트), suffering(고난), 그리고 temptation(유혹) 등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시험’은 어떤 맥락에서는 시련과 연단의 의미로, 또 어떤 맥락에서는 마귀의 유혹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주기도문의 “시험”은 바로 후자의 의미, 즉 “유혹(temptation)”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3절 이하에서 사도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시험(유혹)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우리가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며, 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약1:14~15)고 선언한다. 즉, 인간이 죄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2:16)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뱀(사탄)은 에덴동산에서 “결코 죽지 않는다,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거짓말로 하와와 아담을 유혹했고, 그들은 결국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 유혹은 겉보기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창3:6)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미 주어져 있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뱀(마귀)의 거짓말과 사람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아담은 범죄 후에 책임을 회피한다.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자(창3:9), 아담은 하와를 탓하면서 “하나님이 만들어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그 여자 때문에 내가 실과를 먹었습니다”(창3:12)라고 변명한다. 심지어는 결국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논리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다. 한편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시되,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죄 없이 승리하신다. 이 두 이야기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으로 대비되며, 시험에 대한 교훈을 선명히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우리도 늘 유혹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문장을 포함한 이유다. 또한 이미 유혹에 빠져버렸다면, 그다음 문장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우리의 마지막 호소가 된다. “하나님, 제가 이미 시험에 걸려들었다면, 지금이라도 저를 끄집어내어 주시옵소서. 여기서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진지한 회개와 구원의 기도이자, 죄의 덫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야고보서 1장 전체를 보면, ‘시련(trial)’과 ‘유혹(temptation)’이 구별되어 동시에 제시된다. 야고보서 1장 24절은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연단과 고난으로서, 이를 통해 믿음이 단련되고 인내를 이루어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성경 여기저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를 더 강건하게 세우기 위해 허락하시는 ‘시련과 테스트’가 나온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테스트)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순종으로 믿음이 확증되었고(창22:12), 욥기에서도 욥은 극심한 시련과 고난을 겪었으나 결국 믿음이 더욱 정금같이 단련되었다. 이런 ‘시련’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이며, 우리를 강하게 하고 소망에 이르게 한다(롬5:34).
그러나 야고보서 1장 13~15절이 말하는 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 아니라, 악마의 ‘유혹’이다. 그 유혹은 전적으로 우리의 욕심과 결탁하여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받는다’ 하지 말라”고 단언한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시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가 그 시험을 이기고, 혹은 이미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 구원받도록 손을 내미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주기도문의 시험 기도”가 가진 가장 심오한 메시지라고 설명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지켜 달라’는 간구이자, 혹시라도 넘어졌다면 ‘악에서 구출해 달라’는 은혜의 호소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시험과 유혹을 이기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담처럼 자신의 실수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거나, 하나님이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잘못 판단하면 절대로 해결이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죄로 망가진 우리를 도로 살리시고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사탄은 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널 버렸어, 혹은 네가 이 지경이 된 건 하나님의 불공평한 탓이야’라고 왜곡된 음성을 심어주려 한다. 만약 그런 거짓말을 믿게 되면, 시험에서 헤어나오기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본심, 곧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날마다 기도할 때 이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하나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혹시 제가 넘어졌다면, 그 악에서 건져내어 주옵소서.” 이토록 간구하는 기도를 날마다 드리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의 필수 무장이다. 장재형목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방언과 예언, 여러 은사를 사모하되, 가장 근본적으로 이런 말씀의 원리를 아는 ‘깨달음 있는 다섯 마디 말’을 늘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린도교회에는 방언이 터져 나오고 다양한 은사가 활발했으나, 혼란과 시기가 일어나 서로를 비판하거나 교만해지는 문제도 있었다(고전14장 참조).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섯 마디를 말하여 남을 가르치겠다”라고 했다. 그 다섯 마디가 무엇인지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장재형목사는 이를 주기도문의 다섯 가지 기도와도 연결해 설교하면서, 교회가 은사 중심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중심’으로 체계를 잡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뜨거운 영적 체험이 있다 해도, 정작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나라를 구하는 기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용서를 나누는 기도, 유혹을 이기고 악에서 구원받기 원하는 기도”가 없는 신앙이라면 그 뿌리가 흔들리기 쉽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이 부분은, 우리의 미래와 맞닥뜨린 영적 전투의 핵심을 다루고 있으며, 회개와 구원을 동시에 호소하는 절절한 기도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험을 통과하기 바라시며, 시험에 실패하여 넘어졌다면 다시 돌아오길 원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신앙생활의 큰 여정이라고 역설한다. “사람이 넘어졌을 때, 마귀는 우리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하고, 스스로를 정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몰아간다. 하지만 성령은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우리가 ‘시험’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이라면 기쁘게 받으며 인내로 견디면 되겠지만, 마귀가 가져다주는 ‘유혹’에 빠졌다면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하는 회개와 겸손한 부르짖음을 통해 열린다.
창세기3장과 마태복음4장을 신중히 대비하면, 유혹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제압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다. 첫째 아담이 ‘누가 시켰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숨을 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라고 응수하시며 말씀을 근거로 사탄을 물리치셨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대적하실 때 언제나 꺼내셨던 무기가 바로 성경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었으니, 너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분명히 선언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유혹을 이기는 길이‘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드는 것’임을 증언한다. 말씀을 모르거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으면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결국 주기도문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들은 이 다섯 가지다. 그것을 늘 기억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다섯 마디 기도”라고 부르며, 고전14장에서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깨달은 말이 낫다”는 바울의 말과 연결하여, “주기도문에 응축된 이 다섯 가지가 진정한 깨달음의 말이다”라고 설파한다. 그렇게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나라’를 먼저 구하고, ‘일용할 양식과 용서’를 구하며, 끝으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청하는 삶을 살 때,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지고, 이웃과 화해하게 되며,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이 길은 쉽지 않으며, 날마다 반복되는 영적 싸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미 모범을 보이셨고, 야고보서 등 여러 신약 말씀을 통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것이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약속하신 바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련(trial)은 우리를 연단하여 더 성숙하게 하지만, 사탄이 주는 유혹(temptation)은 우리를 죄에 빠뜨려 죽이려 한다. 그러므로 시험에 대해 늘 경계하며 깨워 기도해야 하고, 넘어졌다면 낙심하지 말고 즉시 돌아서야 한다. 주님은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고치고 새롭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언제나 주시며, 이는 주기도문에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청원으로 직접 이어진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안에서 어린아이부터 장년까지 모두가 일찍이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길 바라고, 성령의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하길 원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임을 거듭 지적한다. 영적 체험은 매우 귀한 것이지만, 말씀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그 체험이 교만으로 흐르거나, 시험에 들기 쉬운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 교육을 통해, “하나님 말씀으로 충분히 무장되고, 주기도문에 담긴 핵심 기도를 날마다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영적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말씀이다. 이 기도는 한편으로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라는 적극적 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유혹에 빠져 죄를 짓게 되었다면, “저를 악의 소굴에서 건져내어 주옵소서”라는 부르짖음의 기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험과 시련, 유혹과 고난, 테스트와 연단이라는 여러 양면이 얽혀 있는 복합적 단어인 “시험”을, 야고보서는 절묘하게 구분하여 해설해준다.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문을 통해 이 사실을 떠올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매달리며,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로 유혹을 물리치고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부름으로 시작되는 기도가, 최종적으로 “시험에서 이기게 해주옵소서”라는 청원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신앙 여정의 전형이라 설명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구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현실과 대인관계의 복잡함을 그분께 맡기며 용서를 실천하다가, 결국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간구하는 것이 신앙의 정수라는 것이다. 여기에 모든 성도가 집중해야 하며, 교회는 이 다섯 가지 기도 제목을 중심축으로 삼아 서로를 세워주고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주기도문의 핵심이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친히 가르쳐주신 위대한 ‘기도 교육’의 완성이다.
결국, 주기도문은 우리가 하나님께 말해야 할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지침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청원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간단해 보이는 구조 속에 엄청난 영적 비밀이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기도문을 외우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다섯 마디 기도의 실제 내용을 각자의 일상에서 날마다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섯 마디 깨달은 말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 깨달음 있는 다섯 마디가 곧 주기도문의 핵심 요소와 일맥상통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처럼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나라를 구하는 대전제의 기도”에서 시작해, “일용할 양식과 용서의 기도”를 거쳐,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탄원으로 마무리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흐름이 곧 인간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믿음의 과정이라고 풀이한다. 과거의 상처와 죄는 용서와 회개로 해결되고, 현재의 필요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미래의 위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극복한다. 그 모든 시간축을 관통하는 주체는 곧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의 자녀로서 왕이신 아버지의 나라와 영광을 우선시해야 한다.
결국 시험이란, 시련(trial)이 되어 믿음을 연단하는 경우도 있고, 유혹(temptation)이 되어 죄로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후자와는 무관하시며, 우리를 넘어뜨리는 악한 존재는 마귀다. 따라서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 거지?”라는 원망과 오해에 빠지지 않고, 뱀(사탄)의 거짓 유혹을 분별하며, 혹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나 ‘악에서 건져달라’고 간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성도들은 점점 더 강건해지고, 주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약1:12). 이것이 바로 시험(유혹)과 시련을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이며, 주기도문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고자 하신 목표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교회와 신학교육, 선교 사역, 다양한 목회 현장에서 가르침과 실천을 지속해 왔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이 단순히 “시험을 없애주세요”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함”과 “이미 넘어졌을 땐 즉시 회개하고 악에서 건져달라 호소해야 함”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고,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기도문 안에 담긴 핵심 기도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날마다 실천하는 개인과 공동체는, 분명히 어떤 환난이 와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나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거듭 전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주기도문 다섯 가지 기도의 핵심을 중심으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구절에 관한 장재형목사의 가르침을 정리해보았다. 이를 오직 3개의 소주제로만 분류하여(하나님의 영광과 나라, 일용할 양식과 용서, 시험과 유혹) 살펴봄으로써, 주기도문 전체가 지닌 구조와 흐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며 경배할 때, 이미 하나님은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열어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되, 과거의 죄와 오늘의 필요, 그리고 미래에 다가올 위험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는 결코 소극적 탄원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자녀의 담대한 고백”이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고,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며, 기도로써 의지할 때, 어떤 유혹과 시험도 결국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는 진리야말로, 주기도문이 전하는 복된 약속이다.